이 봄날에 병원에 갇혀 16일을 보냈다. 오늘 3월 10일, 어제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봄비다. 입원할 때 매화가 제법 많이 피었는데, 화개골의 한 지인이 전화를 해 “매화가 지고 있다”고 했다. 아직 목과 허리가 많이 아파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자주 눕는다.
어제 부산에서 보우스님과 유분식 전 교장선생님, 배동순 동백시낭송회장님이 오시어 병원 앞에서 잠시 얼굴만 봤다. 필자는 병원에 있다고 알리지 않았다. 잠시 외출이 가능할 줄 알고 옷 갈아입고 큰 도로에 나가 기다렸다가 만나서 화개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감염 우려 탓에 외출이 안 된다”고 했다. 환자복을 입은 상태에서 “병원 입구로 차를 몰고 오시라”고 해 어정쩡하게 매우 미안한 마음으로 잠시 만났다. “병원에 있다고 진작 이야기를 했으면 오지 않았을 것인데…”라는 핀잔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한 마음이 컸다.
필자가 있는 4인실에 아버지의 일을 돕다 다쳐 입원한 고등학생과 계속 같이 있다. 내 옆 침상에 한 분이 계시다 어제 퇴원하자 허리가 아프다는 한 분이 바통터치 하듯 입원을 했다.
시골의 작은 병원이어서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 환자들이다. 이곳에서는 어르신이라면 여든이 넘은 경우이다. 100세가 다 되어가는 할머니 환자도 있다는 말을 간호사로부터 들었다. 필자가 입원해 있는 동안 벌써 세 명의 어르신 환자가 병실에서 돌아가셨다.
필자가 있는 층에만 입원실이 있어 화장실에 왔다 갔다 하면서 입원환자를 거의 만나 얼굴을 안다. 입원환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 청소하시는 분, 식사 때마다 밥을 가져다주시는 분, 3교대를 하는 간호사들까지 모두 면식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사교성이 없는 데다 목소리도 크지 않아 목례를 하면서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하는데, 병원이 늘 시끄러워 그런지 알아듣고 답을 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래도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이라 목소리가 커 병실이든 화장실이든 복도든 늘 왁자하다.
어제 옆 침상에서 퇴원하신 분도 “저 안쪽 다른 방에 4일간 있었는데, 89세의 할아버지 환자와 보호자로 와 있는 할머니까지 귀가 많이 어두워 서로 고함을 질러대는 데다 24시간 TV를 켜놓아 잠을 잘 수 없어 이곳으로 병실을 옮겼다”고 말을 했을 정도이다.
오늘 오후에 정수기의 물을 받는 공간에 빈 생수병을 들고 물을 받으러 가니 허리가 굽고 여든이 넘어 보이는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물통을 이리 댔다 저리 댔다 하시면서 “물이 안 나오네? 고장 났나 와 이라노?”라고 하셨다. “제가 해드릴게요”라며 물통을 대니 물이 잘 나왔다. “이렇게 물통을 대고 눌러야 물이 나오고, 뜨거운 물은 물통을 대고 위의 버튼까지 누르셔야 물이 나옵니다”라고 설명을 해드렸다. 할머니는 “아이고, 내가 뭐 이런 걸 해 본 적이 있는감. 이래가꼬 영감 돌본다고 웃기도 안 하제”라고 겸연쩍어 하셨다. 마음이 찡했다.
필자의 하루는 반복된다. 새벽 5시에 간호사가 와 팔에 링거를 꽂아주고 가면 좀 있다 당뇨 체크를 하러 온다. 또 엉덩이 주사를 맞는다. 6시 반쯤에 아침 약을 주러 오고, 7시에 아침 식사가 온다. 필자는 아침을 거의 먹지 못한다. 속이 울렁거려 구토를 할 것만 같아서다. 밥 냄새만 맡으면 올릴 것만 같다. 실제로 두 번이나 화장실에 가 토한 적이 있다.
필자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자지 못할 만큼 예민한 스타일이어서 밤에는 뒤척이다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아침밥 대신 잠을 청하지만 TV소리와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에 실제론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그러다 오전 9시쯤 일어나 샤워실에 가 씻는다. 그런 다음 물리치료실에 가 오전 치료로 목과 왼쪽 어깻죽지에 치료를 받는다. 물리치료 후 카페에 가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신기하게 생각하면서도 좋은 것은 병원은 작아도 카페가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커피를 내려준다. 오픈 시간이 오전9~오후4시, 그리고 토요일은 오전에만 영업을 하고, 일요일엔 문을 닫아 토·일요일엔 좀 아쉽다. 아쉬운 게 하나 더 있다면 병실에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아 휴대전화도 그렇지만 노트북도 연결되었다 끊겼다를 반복해 애를 먹는다.
커피 마신 후 병실에 올라오면 점심밥이 온다. 역시 식판에서 밥만 갖고 반찬은 그대로 식판과 함께 내놓는다. 냄새 탓에 속이 메슥거린다. 밥을 물에 말아 김치 등 맵고 강한 성질의 반찬으로 훌훌 넘겨 얼른 먹는다. 그런 다음 심장약과 당뇨약을 바로 먹은 후 1층 병원 마당에 나가 바깥공기를 들여 마신다. 구토를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며칠 전 간호사에게 이야기 해 주사를 한 대 맞으니, 메슥거리는 게 좀 낫다가 그전보다 심하지는 않지만 또 증상이 비슷하다. 바깥공기를 쐬다 커피를 한 잔 더 마신다. 속을 달래기 위해서이다. 강한 뭔가가 속에 들어가면 좀 낫기 때문이다.
그렇게 속을 달랜 후 오후 치료를 받기 위해 물리치료실에 간다. 오후에는 허리와 왼쪽 엉덩이에 물리치료를 받는다. 물리치료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가량이다.
병실에 와 침상의 커튼을 치고 쉬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휴대전화나 노트북으로 뉴스를 검색하기도 하고, 글도 쓴다. 그러다가 저녁밥이 오면 역시 밥만 챙겨 물에 말아 마시듯 얼른 먹고 저녁 당뇨약까지 챙겨 꿀꺽 넘긴 후 또 병원 마당에 나간다. 병원약은 하루 세 끼 식사 전에 오지만 먹은 걸 올릴까봐 지금은 먹지 않는다.
하여튼 그건 그렇고,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쓸까말까 고민을 하다 적는다. 병원에 있으면서 가장 민망한 내용이다. 화장실이 남녀 각각 한 칸씩 있다. 다른 게 아니라 어르신들이 큰 용변을 보면서 문을 활짝 열어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 시골의 예전 통시 또는 측간에는 문이 없어 그때의 습관 때문이신가?” 생각하며 민망해도 그냥 모른 척했다. 그런데 나날이 보니 대변을 보는 거의 모든 어르신이 그렇게 하신다. 필자의 생각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마스크 구입 문제로 아직도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데, 여기는 마치 안전지대(?) 같다. 필자는 마스크 한 장으로 계속 쓰고 있다.
필자는 몸과 허리가 조금 나으면 하루라도 빨리 퇴원할 생각인데, 아직 그렇게 차도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이번 주말쯤에는 퇴원할 생각이다. 산에 고사리가 올라올 때가 됐고, 차밭 정리도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봄 한철을 병원에서 이렇게 보내고 있으니, 답답하고 갑갑한 심정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교육학박사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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