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모진 목숨 태어날 때3

에세이 제1192호(2020.12.22)

이득수 승인 2020.12.21 15:19 | 최종 수정 2020.12.21 15:28 의견 0

그렇게 아버지가 도망을 간 후 날이면 날마다 순경들이 집으로 몰려와 빨갱이부역자 이기출이를 내어놓으라면서 울어머니 명촌댁을 다그치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주먹은 물론 총 끝으로 이리저리 찌르거나 쥐어박는 바람에 명촌댁은 온몸에 멍이 들고 이빨이 흔들려 밥을 잘 씹지를 못 했다. 어떤 때는 산발한 머리를 움켜쥐고 고개를 뒤로 재껴 두레박 째 물을 먹이기도 하고 심지어 그 물에 고춧가루를 타서 온종일 재채기를 하게도 했다. 어느 날은 개머리판으로 내리쳐 어깨가 빠지기도 하고 허리를 맞아 부엌은 물론 측간출입을 하지 못 하기도 했다.

그 모진 고문과 수모에도 어머니 명촌댁은 끝끝내 남편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또 단 한번 외갓집이라고 찾아온 만택이는 다시는 연락도 없었고 얼굴을 본적이 없다는 말 밖에는 어떤 물음에도 대답을 않고 곱다시 매를 맞았다. 물론 어디로 갔는지 모르기도 하겠지만 학교에 다니거나 특별히 배운 것도 없는 어머니가 참으로 영리하게 잘 버틴다고 감탄하면서도 순찬이(김해 갑조누님) 역시 온갖 집안일과 어머니 명촌댁을 치료하느라 숨 쉴 틈이 없었다. 

낮에 논에 나가 나락을 벼고 홀께로 훑어서 덜 여문 벼를 솥에 쪄 말려 절구통에 갈아 찐 쌀을 만들고 그 찐쌀에 보리쌀과 풋콩이나 양대를 넣어 밥을 짓고 아직 뿌리가 덜 든 무를 뽑아 김치를 담는 일이며 네 살짜리 덕찬이를 돌보는 것도 모두 순찬이의 몫이었다. 물론 세 살이나 많은 갑찬이가 있었지만 그냥 순하고 착한 갑찬이는 또 무지하게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해 늘 벌벌 떨기만 할 뿐 
“새이야, 니 밥솥에 불 좀 때라! 엄마 발라주게 된장 좀 떠오너라!” 

일일이 순찬이가 시켜야만 몸을 꼼작거릴 뿐 아예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렇게 근 보름이나 시달렸을까? 그날도 마루에 명촌댁을 꿇어앉히고 세 명의 순경이 기출이의 행방을 추궁하고 있었다. 평소 말을 더듬어 듣고 있자면 이내 복장이 터져죽을 판인 현직 장구장을 제치고 진장 과수원집의 전임구장 조두천씨까지 불러와 추궁을 당했다. 설마 장구장이나 조두천씨가 기출씨의 행방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온 동네사람들을 다 고생시키지 않으려면 두 사람이 이기출이를 잡도록 협조를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러나 일찍이 언양영명학교를 나오고 부산에서 신학문까지 배워 남들은 꿈도 못 꾸는 과수원을 경영하고 선박사업을 하는 조두천씨가 순순히 협조할 리도 없었고 한 동네에서 태어나 같이 자란 형님동생사이이인 기출씨때문에 죄 없는 고초를 당하고 마음 한 구석에 꽁한 억하심정을 가진 장구장이 혹시 무슨 뜻밖의 이야기라도 꺼낼까봐 
“그, 그, 그 그기 아, 아이고---”

뭔가 말문을 열려고 더듬을 때마다 조두천씨가 끔뻑끔뻑 눈짓으로 말문을 열지 못 하게 단속을 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기출씨의 행방은 탄로가 나지 않고 지나갔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이 잘난 기출씨의 언변이랄까 잔재주가 덧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생질 만택이의 일로 의심을 받는 처지가 되자 그 전에 빨치산을 잘 구슬리어 마을의 큰 화를 막을 당시 ‘자신에게도 신불산엔가 지리산엔가 입산한 조카뻘이 있다.’고 한 이야기가 화를 불러온 것이었다. 입살이 보살이라고 의심을 더 하고 추달이 심해지기에 딱 맞은 경우가 되고 만 것이었다.

몇 며칠을 계속 매를 맞아 이제 몸도 가누기 힘든 명촌댁의 참혹한 몰골을 보다 못 해 직전구장 조두천씨가 이제 엔간히 하고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진장의 자기 집에 닭을 한 마리 고아놓았다고 조를 때 쯤 중남지서에서 순경 한 명이 달려오더니 책임자의 귀에 무어라고 속삭였다. 

사진1.여름에 찍은 신불산의 태산준령, 가운데 움푹한 부분, 장재골로 올라가면 신불재가 된다
여름에 찍은 신불산의 태산준령, 가운데 움푹한 부분, 장재골로 올라가면 신불재가 된다

그러자 갑자기 순경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리고는 명촌댁을 풀어주며 그간 고생했다고 이게 다 공산당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면서 순순히 물러가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불산에 진을 치고 삼남면과 하북면에 출몰하던 만택이가 지리산 피아골에서 총을 맞은 시체로 발견되어 언양의 외삼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 것이었다. 괜히 생사람을 잡았지만 어디에 대고 항의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이튿날 삼동면 출강인가 어디에 숨었던 기출씨가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만택이가 신불산일대에선 워낙 소문난 빨치산두목이라 지리산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댓바람에 온 천지에 퍼지는 바람에 자신도 금방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지난해에 집을 나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기출씨는 죽었으면 죽었지 집을 떠나 도망하지는 않는다고 버텼는데 과연 이튿날 중남지서에서 순경 두 명이 기출씨를 찾아왔다. 다시 기출씨가 빨갱이와 내통했다는 고발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바로 이웃집아낙으로 부터. 

사단은은 이랬다. 기출씨와 함께 빨치산에게 잡혀 둘은 소를 몰고 둘은 쌀을 지고 신불산을 넘어갔던 세 사람 중 가장 젊은 방앗간 집 머슴 덕대는 산 너머 빨치산의 아지트에서 곧바로 “인민공화국 만세! 김일성장군만세!”를 부르고 산사람이 되었고 남은 셋이 한밤중의 신불산을 넘어올 때였다. 

어디로 가서 어디로 오는 지, 그래서 아지트가 어딘지 짐작하지 못 하게 온 산을 돌리다가 마침내 신불산에서도 가장 높고 험한 금강폭포으름에서 빨치산들이 놓아주는 바람에 금강골의 경사진 눈길을 더듬더듬 내려올 때였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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