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676)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3장 누님 또 누님들⑧

이득수 승인 2024.02.07 07:00 의견 0

그렇게 악담을 하고 떠난 복련씨가 더러운 게 핏줄이고 정이라며 죽은 부모 대신 친정조카와 올케의 얼굴이라고 보러 온 날이 하필이면 수일씨와 맞닥뜨린 날인 것이었다. 마치 몇 년 전 복련씨 내외가 왔던 날의 재방송처럼

“내 이 노무 집구석을 고향이라고 다시 오면 사람새끼가 아이다. 등말리 보고는 오줌도 안 눌 끼다.”

수일씨가 혼이 빠져 멍한 아내를 데리고 깜깜한 밤길을 돌아갔다.

“그래 명촌누님네 사는 것은 좀 어떻다카더노?”

“당신도 참 희한한 사람이요. 우째 당신누님 일을 내한테 묻능교?”

“그거사 당신이 소소한 이야기를 꽁창시럽구로 잘 기억하이 그렇지.”

“참 별씨럽네. 언제는 아이들 공부 잘 하는 것이 자기의 기억력 좋은 것을 닮아서 그렇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더니.”

“그 말은 맞는데 나는 소소한 남의 가정사나 여자들의 심리상태 같은 것이 잘 기억이 안 돼.”

“그거사 당신이 만사 건성으로 들으니 그렇지. 내가 시누이들의 이야기들 듣는 일, 수원에 제사지내러 갈 때 1박2일이나 설, 추석 명절이나 벌초 묘사 때 당신하고 꼭 같이 만나는데 우째 자기 형제이야기를 나한테 묻소?”

“그게 말이지 나는 누님들 하고 여행을 하다가도 지나가는 지역의 역사나 문화재, 지역특산물, 그 지역에서 배출된 이름난 작가나 작품배경과 주인공 같은 것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 새 휴게소가 되고 점심 먹는 시간이 되어 누님들과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잘 안 듣지.”

“그래서 글 쓰는 사람하고 사는 것이 골치 아프지. 내가 당신하고 연애할 때 마주보고 하는 말도 재미있고 구구절절 그 간절한 연애편지를 보고 순간적으로 까뿍 넘어가기는 해도 한편으로는 시인이나 문학하는 사람하고 결혼하면 밥을 못 먹는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다시는 안 만날 것이라 생각하다 이상하게 또 만나지더란 말이지. 무슨 마법에 흘린 것처럼.”

“...”

“다방에서 나올 때 마다 담배와 라이터를 놓고 나오는 당신을 보고 내가 이 말만 번듯하고 도무지 야무치지 못한 사람하고 결혼해서 평탄하게 한 평생을 살아 낼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라도 챙겨주지 않으면 저 착해빠진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까 싶은 걱정도 되고...”

“어째 이야기가 또 어문 데로 빠진다.”

“하여간 남의 이야기 건성으로 듣는 것 하고 소소한 가정사나 자잘한 여자의 심리를 몰라도 너무 몰라. 공부는 그렇게 잘 한다는 사람이 왜 길눈은 그렇게 어두워 수십 번, 아니 날마다 출근하는 버스길을 왜 그리도 몰라?”

“그래 말이야. 걸어갈 때는 잘 보이는데 차만 타면 그만 아무 생각이 안나. 오리무중이라고 그야말로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현실세계의 노선표지와 교통신호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러면서도 공자맹자가 어떻고 이집트, 그리스가 어떻고 세익스피어가 어떻고 김동리, 황순원이 어떻고 맨 생소한 이야기만 하는 당신세계, 내가 운전하는 승용차조수석에서 단 한 번도 신호를 보아주는 일 없이 평생을 신선놀음, 아니 문학적 상념에 빠져서 사는 당신이랑 사는 게 힘들어.”

“말하는 거 보면 힘든 거보다 즐기는 것 같군. 이미 반은 철학자가 된 것 같군.”

“하긴 그래도 아침마다 벌떡벌떡 잘도 일어나 밥 한 그릇 뚝딱하고 출근 잘 하는 것, 식구들 먹여 살리는 일 하나는 참 지극정성이지. 시인의 아내가 가난하다지만, 그리고 실지로 우리가 넉넉하게 살지는 못 했지만, 그렇다고 몹시 쪼들리거나 살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날마다 출근 잘 하고 다달이 월급이 꼬박꼬박 나왔으니까.”

여자는 남자가 벌어오는 돈이 적고 많고 문제가 아니고 다달이 고정적 수입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내고 아주 작은 돈이라도 저축을 할 수 있지요. 박봉이라도 꼬박꼬박 나오는 것을 너무나 행복하게 생각하던 사람, 또 처가의 처남, 처제 넷이 명절 때마다 이 세상에서 용돈을 주는 단 한 사람, 형부와 매형의 용돈봉투, 그게 얼마나 올랐을까 기대하며 목을 빼는 판에 그 먼 영주까지 가야하는 큰 집, 행정공무원을 생기는 것이 많다는데 왜 제사비용은 요것밖에 안 주느냐고 입술이 뾰르통한 형수, 인정이 많아 서로 우리 열찬이, 열찬이를 입에 달고 살아도 모조리 농사꾼의 아내가 되어 우선은 돈이 없고 또 돈이 있어도 쓸 줄을 몰라, 특히 이미 상당한 부자로 소문난 막내 매형은 돈 드는 일이라면 아예 입을 다물어 실권 없는 부잣집 마나님 덕찬씨가 입이 바른 금찬씨에게 부자가 소고기도 한 번 안 산다고 지청구를 먹기 일쑤인 누님들, 부모님의 제사 때 같이 수원까지 움직이면 그 박봉에서 차표를 끊고 간식을 사야해 집에 돌아오면 매번, 차비마저 달랑달랑 하던 일, 한 번씩 형님 일찬씨가 트집을 잡고 횡포에 가깝게 시비를 걸면 열찬씨의 손을 꼭 잡고 말리다가 부산에 돌아와서 펑펑 눈물을 쏟던 영순씨는 그 복잡한 가족관계에 끼어 고생하는 남편이 불쌍해서 울고 열찬씨는 가난한 집 큰 딸로서 세상살이도 어두운 아버지와 공장에 다니는 어머니 대신 네 동생들의 진학이나 취업을 도맡아 해결하고 명절마다 용돈을 줘야하는 남편에게 미안해 기를 못 펴는 아내가 불쌍하고. 남들은 부부가 한 평생을 사는 것이 알콩달콩 정으로 살고 어떤 사람들은 날마다 아웅다웅 싸우면서도 그 싸우는 재미에 차마 미워하지를 못 한다는 미운 정에 산다고 했지만 열찬씨내외는 서로 처가와 친가의 힘든 환경에 부대끼는 것이 불쌍해서 그러면서도 서로 처가와 친가의 일에 단 한 번도 원망을 하거나 소홀하지 않는 고마움, 어쩜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불쌍한 마음 때문에 사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야기가 또 옆으로 샜네. 그래 명촌누님 사는 것은 좀 어때?”

“자기 땅은 거의 다 팔고 칼치못 위에 밭떼기 하나 논 도가리 하나 밖에 없어도 영감할마이가 다 죽고 자식들이 돌보지 않아 묵어버린 대밭 뒤에 도산댁의 논밭이나 못뚝 밑에 경주사람이 사서 묵힐 판인 논을 퇴직한 일식이 조카가 모단마을에 사는 제 손위동서의 트랙터를 가끔 빌려와 농사를 지어 양식하고 채소는 걱정이 없다고 하데. 그렇지만 그저 식구들 양식이나 하는 정도지 그게 돈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까 문제는 집만 덩그렇지 다달이 회사에서 월급이 나오던 사람들이 고정수입이 없으니 죽을 판이지 아이들은 이미 대학을 가고 군대들 가는 판에 말이지.”

“그래서 우짠다 카더노?”

“당신도 그 때 맨 같이 들어놓고 그라네.”

혀를 끌끌 차던 영순씨가

“남편이 돈 잘 벌 때는 매일 옷과 화장품이나 사 모으면서 여기가 아프니 저기가 슬프니 제 몸 하나 간수를 못 하던 질부 천집사가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서 취직을 해도 수입이 시원찮아 식당을 개업한 것을 보면 역시 전라도여자는 생활력이 강하다는 말이 맞아.”

“맞다. 그 때 웰빙식당이란 분식집을 개업해서 장촌누님네랑 울산 동생네랑 같이 가서 내가 봉투를 하나 주고 왔지.”

아직은 조카가 개업을 하면 축하하러 가서 그저 밥이나 한 끼 얻어먹고 오는 것으로만 아는 사람들임을 알고 나중에 구차스럽게 밥값 따져서 주지 말고 봉투를 준비하라고 한 영순씨의 말대로 한 것이 기억났다. 하기야 출판기념회를 두 번 해도 형제간에는 그저 식장에 참석해 먹고 가는 입부조가 도와주는 것임을 아는 형제들, 심지어 언양국민학교의 출판기념회 말미의 뷔페식 식사가 끝나자 제수씨와 질부가 남은 음식을 포장해 가는 판에...

“그런데 농사짓는 틈틈이 내려와서 3천 원짜리 칼국수를 배달하는 조카까지 두 부부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별 남는 것이 없다는 거지. 그래서 질부가 식당일을 하면서 또 부업을 하는데 요양보호사 때 알게 된 퇴직교장선생님이 어음에서 혼자 사는데 80이 넘어 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오후 세시에 가서 다섯 시까지 말동무 겸 청소, 빨래, 하루 동안 먹을 음식을 해주고 한 달에 50만원을 받는데 질부가 얼마나 싹싹하고 남의 기분을 잘 맞추는지 영감이 다른 사람은 절대 안 된다고 할 정도라 자식들이 꼬박꼬박 입금을 해주면서 혹시 그만둘까봐 신주 모시듯이 한다네.”

“참 별 재주도 있네. 얼핏 보면 차갑고 매끄러운 인상인데. 그건 그렇고 일식이는?”

“취직을 할라캐도 대기업 다니던 사람이라 자기는 월급을 그렇게 많이 못 준다며 소소한 공장에는 받지를 않고 괜찮다고 들어가도 일은 너무 고되고 월급은 너무 작아 오래 버티지도 못 하고 주유소나 택배회사에 알바를 해도 그게 젊은 사람이나 할 일이지 도무지 힘이 달려서 오래도 못 하고.”

“저런...”

“그러다가 적성도 임금도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직장을 잡았지. 공장이 경주 산내라 삽재 지나 외양만디 넘어 길이 좀 멀어 그렇지만 자동차 기름 값을 주니 걱정 없고 부산, 울산 한의원에서 주문받은 한약을 대신 짜주는 곳이라 어려서 부터 공장에 간 엄마대신 제 손으로 밥을 챙겨 동생들 먹여온 데다 성격이 알뜰하고 손끝이 야문 일식이조카에게 적성에 딱 맞고 대기업출신이라 빨리 책임자자리를 주더라더군.”

“맞아. 그래서 우리가 공진단을 많이 팔아줬다 아이가?”

명절에 만난 일식씨가 자기는 한의원에서 직접 약을 짜는 줄 알았는데 자기가 막상 취직을 해서 보니 그건 전부 전시용 폼이고 사실은 거의 모든 한의원에서 공장에 맡겨서 한약을 짠다며 회사에서도 단순한 가공수수료만으로는 경영이 어려워 자체로 몇 가지 한약을 개발했지만 잘 팔리지 않아 마침내 홍삼과 녹용이 들어가 방금 죽어가던 사람도 한 숟갈만 먹으면 눈을 번쩍 뜬다는 한약 중에서 제일 비싼 경옥고를 개발했다는 말을 하는 지라 우선 영순씨가 거금을 들여 한 병을 사서 열찬씨가 먹어보니 맛이 쌉싸레하면서도 달짝지근 과연 먹을 만해 괜찮다고 하니 영순씨가 여보산악회의 애순씨를 비롯한 각종 모임의 풍족한 가정, 몸에만 좋다면 돈을 안 아끼는 계원들에게 소개해 여남은 병이나 팔아주는 엄청난 성과를 올려 홍식씨는 단번에 박부장이 되고 덤으로 열찬씨에게 공진단 한 통을 더 보낸 일도 있었던 것이다.
“잘 됐네. 인자 밥걱정은 없겠네.”

“아니요. 뭔가 위태위태하다고 하네.”

“와?”

“그 회사 여사장이 청우회 왕보살처럼 지극한 불교도라 보통보살이 아닌 무슨 암자의 신도회장인데 조카가 예수쟁이라는 걸 눈치 챈 모양이라고 하네.”

“아니 예수쟁이가 뭐 어때서? 우리나라 헌법에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데 말이야?”

“암만 그렇다 해도 현장에서는 그게 아니지요. 손끝도 야무치고 몸도 안 사리고 특히 공진단매출을 잘 올려 한 2년만 지나면 공장장을 시켜준다고 까지 했는데 지금은 사장하고 맨숭맨숭하다고 하더군.”

“와? 단지 종교가 다르다고 차별대우를 하면 근로기준법인가 뭔가 노동법 위반이라 노동청의 신고대상이 될 낀데.”

“그건 법이고, 현장에선 언제나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명색이 부장이란 사람이 자동차를 사거나 새 기계를 넣었다고 고사를 지내면 남들처럼 만 원짜리 배추이파리를 돼지 콧구멍에 꽂고 술을 붓고 절을 하기는커녕 우상을 모신 부정 탄 음식이라고 떡 한 쪽 막걸리 한 잔을 먹지도 않고 남들 고사지낼 때 한쪽 구석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저 죄인들을 용서해달라고 혼자 우물우물 기도나 올리는 사람이 절에 가면 신도회장까지 하는 보살의 입장에서 어디 용납이 되겠소?”

“큰일이네. 당신이 공진단 부지런히 팔아줘야 되겠네. 공진단 못 팔아주면 모가지 될 지도 몰라.”

“설마?”

“그건 그렇고 둘째 또식이는 요새 우짜고 사능고?”

“아이고, 골치 아파라. 그 아가 젊을 때 술이 취해 연산동 우리 집에 와서 땡깡놓은 거 생각도 안 나요?”

“장개 가고 교회 다니고 인자 마음잡았다던데. 아아도 너이나 되고.”

“그러니까.”

그 제서야 둘째 아들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 이 글은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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