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28) -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을 수 있다면 무엇인들 이루지 못하리

허섭 승인 2021.11.23 17:45 | 최종 수정 2021.11.25 10:20 의견 0
328 오창석(吳昌碩 1844~1927) 세조도(歲朝圖) 110+45.5
오창석(吳昌碩, 1844~1927) - 세조도(歲朝圖)

328 -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을 수 있다면 무엇인들 이루지 못하리

피리와 노래 소리 한창 무르익을 때에 문득 옷소매를 떨치고 훌쩍 떠나감은 
마치 달인이 절벽에서 손을 놓고 걸어가는 것과 같아 참으로 부러울 따름이고

시간이 이미 다 지난 때에 여전히 쉬지 않고 밤길을 어슬렁거리는 것은  
마치 속된 선비가 몸을 고해에 빠트리는 것과 같아 참으로 우스울 따름이다.

  • 笙歌(생가) : 피리를 부르며 노래함.  笙은 생황(笙簧)으로 19개 또는 13개의 가느다란 대나무 관을 묶어 만든 악기이다.  * 국악기 생황은 17개의 대나무관으로 되어 있다.
  • 正濃處(정농처) : 분위기가 바야흐로 무르익을 때.  正은 부사로 ‘마침, 바로 막, 바야흐로’ 의 뜻이다.
  • 拂衣(불의) : 옷깃을 떨침.
  • 長往(장왕) : 멀리 떠나감. 세속(世俗)을 떠나는 것을 의미함. 
  • 羨(선) : 부러워하다.  선망(羨望).
  • 撤手懸崖(살수현애) :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음. 위험을 무릅쓰는 대담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懸崖는 절벽(絶壁)을 말함.  撤은 ‘뿌리다, 흩어버리다’.
  • 更漏(경루) : 밤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  更은 夜의 뜻, 漏는 ‘물셀 루’ 로 물시계(漏刻)를 뜻함.
  • 已殘(이잔) : 이미 다 없어짐.
  • 猶然(유연) :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는 모양. 즉 일없이 쏘다닌다는 뜻이다.
  • 不休 (불휴) : 쉬지 않음.
  • 咲(소) : 笑의 고자(古字)이다.
  • 俗士(속사) : 속인(俗人).
  • 沈身苦海(침신고해) : 자기 몸을 고통의 바다에 빠트림.
328 오창석(吳昌碩 1844~1927) 세조청공도(歲朝淸供圖) 151.6+80.7 북경고궁박물원
오창석(吳昌碩, 1844~1927) - 세조청공도(歲朝淸供圖)

◈ 벼랑 끝에서 손을 놓다

得樹攀枝未足奇 (득수반지미족기)  나뭇가지를 잡음은 결코 기이한 일이 아니라
懸崖撒手丈夫兒 (현애살수장부아)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장부일 것이라  
水寒夜冷魚難覓 (수한야냉어난멱)  물은 차고 밤도 싸늘하여 고기도 물지 않으니 
留得空船載月歸 (유득공선재월귀)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누나 

※ 선시(禪詩)의 최고봉인 야보도천(冶父道川) 선사(禪師)의 게송인데 1~2구와 3~4구의 내용이 서로 생뚱맞아 과연 이 시가 한 편의 온전한 작품인지 서로 다른 두 편의 시가 반반으로 합쳐진 것인지 의문이 든다. 물론 뒤의 3~4구는 앞에서 말한 월산대군의 표절 시조에서 먼저 살펴본 바가 있을 것이다. <후집 제63장 참조>

채근담 본장의 대의(大意)는 ‘과연 벼랑 끝에서 손을 놓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장부가 평생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단한 결단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박수칠 때 떠나갈 수 있는 용기도 장차 욕됨을 얻지 않는 지혜일 것이다.

◈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 마침내 나라와 운명을 함께하다.

<得樹攀枝未足奇(득수반지미족기) 懸崖撒手丈夫兒(현애살수장부아)> 는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이 상해 홍구공원 폭탄투척의 의거(義擧)를 앞둔 윤봉길 의사(義士)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인용했던 구절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백범은 자신이 과거 황해도 안악 치하포 나루터에서 국모살해(國母殺害)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군 중위 쓰치다(土田讓亮)를 척살(擲殺-메어쳐서 죽임)할 때 가슴이 몹시 울렁거렸지만 이 구절을 떠올리며 애써 심사를 가라앉혔다면서 윤의사를 격려했다고 한다. 

◉ 백범은 아직 상해로 망명하기 전 한때 동학에 입도(入道)해 접주(接主)가 된다.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동학군의 선봉장이 되어 해주성을 공격한다. 그러나 곧 실패하고 안중근 의사의 부친인 안태훈 진사의 집에 피신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해서(海西) 지방의 고명한 선비인 후조(後凋) 고능선(高能善)을 만나 학문과 삶의 길을 배우게 된다. <得樹攀枝未足奇  懸崖撒手丈夫兒> 라는 구절도 고능선으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백범일지(白凡逸志)』는 전하고 있다.

또『백범일지(白凡逸志)』에 따르면 선생은 난관에 봉착했을 때마다 『서장(書狀)』에 나오는 이 게송을 떠올렸고, 선택의 기로(岐路)에서는 서산대사의 시「야설(野雪)」을 썼다고 한다. 

* 백범의 휘호(揮毫)로 더욱 잘 알려진 「야설(野雪) - 일명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은 사실은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이 지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집 제48장 참고>

◉ 이른바 치하포 사건은 일개 의혈 청년 김창수(金昌洙)가 국모 살해의 원수를 갚기 위해, 변복(變服)하여 밀행(密行) 중이던 일본 중위 쓰치다를 때려죽인 후, 국모보수(國母報讐)의 포고문을 길거리마다 내다걸며 그 마지막 줄에‘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라 떳떳이 자신의 이름을 밝힘으로써 그는 마침내 한 나라와 그 운명을 함께하게 되었다.

* 백범은 1896년 2월(양력 3월 9일)에 감행(敢行)한 치하포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인천 감옥에 수감된다. 10월 법부에서 사형을 언도 집행 당일 사형수는 형식상으로도 황제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일이여서 이 일은 곧 고종 임금에게 전해졌고 고종은 어전 회의를 거쳐 인천감리 이재정(李在正)을 전화로 불러 사형집행을 면하라고 지시한다. 이때가 1896년 윤8월 26일(양력 10월 2일)이었으니 서울과 인천 간 전화가 개통된 지 3일만의 일이었고 바로 몇 시간 전에 인천 감옥에도 전화가 가설되었던 것이다.

“얘야, 네가 이제 가서는 왜놈 손에 죽을 터이니, 맑고 맑은 이 물에 너와 나와 같이 죽어서 귀신이라도 모자가 같이 다니자”  /  “어머님은 자식이 이번에 가서 죽는 줄 아십니까? 결코 죽지 않습니다. 자식이 국가를 위하여 하늘에 사무치게 정성을 다하여 원수를 죽였으니, 하늘이 도우실 테지요. 분명히 죽지 않습니다.”  -  인천 감옥으로 이송되던 7월 25일 밤, 나진포 뱃전에서 두 모자가 나눈 대화이다. 위대한 영혼의 뒤에는 그를 낳아 기른 거룩한 모성(母性)이 있었으니, 도마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와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가 바로 그분들이다.

서장(書狀)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스님이 문하의 거사와 유학자들의 질문에 답하여 선의 요지를 설명한 편지글을 모은 것이다.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에 속하는 중국 남송 시대의 스님인 대혜종고는 묵조선(黙照禪)을 배격하고 간화선(看話禪)을 제창하였기 때문에, 간화선의 전통을 이은 한국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이 책을 우리나라 사집과 교과목 중 제1의 과목으로 선정하여 중시하게 된 까닭은, 고려의 지눌(知訥)이 『서장』을 보다가 도를 깨친 뒤 이 책을 간화선 지도의 지침서로 삼았으며, 책의 내용이 공부를 시작하는 학승(學僧)들에게 바른 지견(知見)을 심어 주어 그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기 때문이다.

선을 공부하는 지침서로서의『서장』은 조사선과 간화선의 본질을 잘 밝히고 있다.『서장』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체험되는가’ 라는 주제에 대한 다양한 각도에서의 설명이다. 이 점에서 『서장』은 특정 종교를 초월하여 깨달음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올바른 길을 안내해 준다. 또 ‘선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답한 선 공부의 지침서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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