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21) - 그윽한 이의 맑은 행적은 오직 유유자적(悠悠自適) 함에 있으니 … 

허섭 승인 2021.11.15 20:37 | 최종 수정 2021.11.17 16:59 의견 0
321 낭세녕(郎世寧 1688~1766) 화음쌍학도(花陰雙鶴圖) 121.7+66.3 대북 고궁박물원
낭세녕(郎世寧, 1688~1766) - 화음쌍학도(花陰雙鶴圖) 

321 - 그윽한 이의 맑은 행적은 오직 유유자적(悠悠自適) 함에 있으니 … 

그윽한 이의 맑은 행적은 오로지 유유자적(悠悠自適) 함에 있으니

그러므로 술은 권하지 않음을 기쁨으로 삼고, 바둑은 다투지 않아 이김을 얻고
구멍 없는 피리 불기를 즐겨하며 줄 없는 거문고를 고상하게 여기나니
만남에는 기약 없음을 참됨으로 삼고 
손님은 반기지도 붙잡지도 않아(마중도 배웅도 하지 않음을) 되려 편안하게 여기니

만약 한 번이라도 형식에 이끌려 겉치레에 매인다면 
곧장 속세의 고해(苦海)에 떨어질 것이다. 

  • 幽人(유인) : 세속을 벗어나 한가히 지내는 은자(隱者).  * 필자는 『노자(老子)』나 『장자(莊子)』에 나오는 ‘至人(지인) / ‘眞人(진인)’ 을 ‘참사람’ 이라 옮겼으나 至人만큼은 때로는 ‘그윽한 이’ 이라 옮기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여기 幽人을 그렇게 옮긴다.
  • 淸事(청사) : 맑은 흥취, 청흥(淸興).
  • 總(총) : 모두.
  • 自適(자적) : 마음 내키는 대로 함, 유유자적(悠悠自適)함.
  • 棋(기) : 바둑.  碁, 棊와 동자(同字)이며, 바둑과 장기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쓰며, 일반적으로 통칭하여 ‘弈棊(혁기)’ 라 한다.
  • 以(이)~ 爲(위) ~ : ~을 ~로 삼다(여기다). 
  • 無腔(무강) : 구멍이 없음. 흔히 ‘구멍이 없는 젓대’ 를 ‘무공적(無孔笛)’ 이라 부르며 아래에 나오는 ‘무현금(無玄琴)-줄 없는 거문고’ 와 짝을 이루는 말이다.
  • 眞率(진솔) : 참되고 솔직함.
  • 坦夷(탄이) : 마음이 편함.  坦은 ‘평평하다, 편하다, 너그럽다’ 의 뜻이고, 夷는 ‘크다, 온화하다, 편안하다’ 의 뜻으로 두 글자 모두 平과 뜻이 같다.
  • 牽文(견문) : 겉치레에 얽매임. 번문(繁文)과 같은 뜻임.
  • 泥跡(니적) : 형식에 사로잡힘. 욕례(縟禮)와 같은 뜻임.
  • 繁文縟禮(번문욕례) : 지나치게 번거롭고 형식적인 절차나 예절. 쓸데없는 허례(虛禮)나  번잡(煩雜)한 규정(規定)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321 낭세녕(郎世寧 1688~1766) 백준도(百駿圖) 94.5+776.2 左 대북 고궁박물원
낭세녕(郎世寧, 1688~1766) - 백준도(百駿圖)

◈ 도연명(陶淵明)의 무현금(無絃琴)

◉『송서(宋書)』「도연명전(陶淵明傳)」에 기록하기를

蕭統曰(소통왈)  淵明不解音律(연명불해음률) 而畜無絃琴一張(이축무현금일장) 每醉適(매취적) 輒撫弄以寄其意(첩무농이기기의).

- 소통이 말하기를, 도연명은 음률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줄 없는 거문고를 하나 가지고(畜) 있어 매양 술기운이 거나해지면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자신의 마음을 실어 달래곤 하였다. 

◉ 약 600여 년 뒤에 소동파(蘇東坡)는 이 말에 의문을 제기했으니

北宋(북송) 蘇東坡云(소동파운) 舊說淵明不知音(구설연명부지음) 畜無弦琴(축무현금) 以寄意曰(이기의왈), 旦得琴中趣(단득금중취) 何勞絃上聲(하로현상성), 此妄言也(차망언야). 淵明自云(연명자운), 和以七絃(화이칠현), 豈得不知音(기득부지음). 當時有琴(당시유금) 而弦弊壞(이현폐괴) 不復更張(불부경장) 旦撫琴以寄意(단무금이기의) 如此爲得其眞(여차위득기진).

- 북송의 소동파가 말하기를, 옛말에 < 도연명이 음악을 몰라 줄이 없는 琴을 가지고 여기에 마음을 실어 달래면서 ‘거문고의 아취만 즐기면 그뿐 수고롭게 줄을 뜯어 소리를 내야 맛이겠는가?’> 했다는데, 이는 망언이다. 
연명은 자신의 시에서 ‘칠현금을 연주했다(和以七絃)’라 했는데 어찌 음악을 모른다 하겠는가? 당시에 마침 끊어진 줄을 아직 채 매지 않은 거문고가 하나 있어, 줄이 없는 그 거문고을 잠시 어루만지며 기분을 내지 않았던가 …,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 마지막으로 「시운(時運)」이란 시에 나타난 도연명 본인의 말이다.

時運(시운) 游暮春也(유모춘야). 春服既成(춘복기성) 景物斯和(경물사화) 偶影獨游(우영독유) 欣慨交心(흔개교심).

- 「시운」은 늦봄에 노니는 시이다. 봄옷도 이미 지어졌고 경치도 이토록 아름답지만, 홀로 그림자와 함께 노니나니 기쁨과 슬픔이 서로 엇갈린다.

邁邁時運(매매시운) 穆穆良朝(목목량조)  시절 끝없이 돌고 돌아, 온화한 좋은 아침이네
襲我春服(습아춘복) 薄言東郊(박언동교)  나는 봄옷을 걸쳐 입고 잠시 동쪽 들녘으로 나간다네
山滌餘靄(산척여애) 宇曖微霄(우애미소)  산에는 남은 안개 자욱하고 하늘에는 엷은 구름 희미하다
有風自南(유풍자남) 翼彼新苗(익피신묘)  바람은 남쪽에서 불어와 새싹들을 나래처럼 감싸네

洋洋平澤(양양평택) 乃漱乃濯(내수내탁)  넓고 넓은 연못에서 양치하고 손발을 닦네 
邈邈遐景(막막하경) 載欣載矚(재흔재촉)  아득히 머나먼 풍경 기뻐하며 바라본다.
稱心而言(칭심이언) 人亦易足(인역이족)  내 마음을 말하자면, 사람은 역시 쉽게 만족한다는 것
揮茲一觴(휘자일상) 陶然自樂(도연자락)  한 잔 술 들이키니 거나하여 절로 즐겁다네

延目中流(연목중류) 悠悠清沂(유유청기)  시냇물로 눈길 보내며 아득히 맑은 기수를 생각느니
童冠齊業(동관제업) 閒詠以歸(한영이귀)  아이들과 함께 공부 마치고 한가롭게 노래하며 돌아오누나
我愛其靜(아애기정) 寤寐交揮(오매교휘)  나는 그 정취를 좋아라 하니 자나깨나 눈앞에 어른거린네 
但恨殊世(단한수세) 邈不可追(막불가추)  다만 시대가 달라 그 옛날 좇아갈 수 없음을 한탄하네

斯晨斯夕(사신사석) 言息其廬(언식기려)  아침이나 저녁이나 이 디새집에 깃들여 산다오
花藥分列(화약분렬) 林竹翳如(임죽예여)  꽃과 약초가 줄지어 있고, 숲과 대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네
清琴橫床(청금횡상) 濁酒半壺(탁주반호)  거문고는 평상 위에 비껴두고 탁주는 반병이나 남아있네
黃唐莫逮(황당막체) 慨獨在余(개탁재여)  전설 같은 그 시절에 미칠 수 없어 홀로 있음을 슬퍼하네

沂(기) : 沂水(기수). 산동성(山東省)에서 발원하여 사수(泗水)로 흘러 들어가는 강으로, 공자가 사수 가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사수를 공문(孔門)의 발상지로 여긴다.

童冠齊業(동관제업),閒詠以歸(한영이귀) : <論語 先進 25>에 나오는 그 유명한 욕기(浴沂)의 고사(故事)를 말한다. 증석(曾晳)이 공자의 물음에 답하기를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관(冠)을 쓴 어른 5∼6명과 동자(童子) 6∼7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라고 하였다.

삼짇날 :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로, 음력 3월 3일을 가리키는 날이다. 답청절(踏靑節)이라고도 하는데, 이날 들판에 나가 꽃놀이를 하고 새 풀을 밟으며 봄을 즐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이 시는 도연명의 40세 때 지은 시로, 봄날 삼짇날(음력 3월 3일) 물가에서 몸을 닦는 풍속을 따라 아름다운 봄날의 감개를 나타내면서 한편으론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시절과 황제와 당요의 시대와 비교하여 유독 자신만은 홀로 있음을 자탄(自嘆)하는 심경이 드러나 있다. 이 시에 서(序)에 “「時運」은 늦봄에 노니는 시이다. 봄옷도 이미 지어졌고, 경치는 아름답지만 홀로 그림자와 함께 노니는데 기쁨과 슬픔이 서로 교차한다.” 라고 하였으니 이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스스로 해설한 것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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