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62) - 외할아버지가 더 좋은 생을 받으셨을 날

소락 승인 2021.03.15 20:08 | 최종 수정 2021.03.19 10:38 의견 0
외할아버지 49재 모임(셋째줄 우로부터 2번째 엄마, 넷째줄 우로부터 2번째 아버지)
외할아버지 49재 모임(셋째줄 우로부터 2번째 엄마, 넷째줄 우로부터 2번째 아버지)

친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 가셨으므로 외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아마도 엄마가 외할아버지께 작명을 요청드려 받은 이름이겠다. 기철(起徹)은 흔한 이름이지만 나한테 어울리는 이름 같다. 기철이라는 글자의 어감이 주는 음파가 나같다. <이름대로 산다>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름이 주는 진동이 사람의 삶에 지속적 영향을 미친다는데 그럴 듯하다. 아무튼 나다운 이름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자기 이름을 평생 듣고 쓰며 사니까 자기한테 익숙해서 가지는 당연한 마음일 것이다. 누나는 어릴 적에 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라서 다르겠지만 나한테 외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은 그리 또렷하지는 않다. 막내딸인 울 엄마 집에 자주 오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그 때마다 외할아버지를 잘 모셨다. 누나도 할아버지를 잘 모셨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누나를 귀여워 하시는 표현이 조금 독특하셨다. 누나가 재롱을 부리면 웃으시면서 ‘요년~!’ 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었다. 할아버지께서 콩나물을 싫어하시던 것도 기억난다.

이름까지 지어준 외손자한테는 그리 특별히 하시는 말씀이 없으셨던 것 같다. 그래도 엄마를 통해 나한테 피를 물려주신 분이다. 1906년에 태어나신 외할아버지는 여든이 되시기 직전 1984년에 돌아가셨다. 내가 회사생활을 시작한 해다.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루어졌다. 사진은 장례식 모습은 아니고 49재 때 엄마가 두 언니와 엄마 오빠의 아내인 두 올케와 함께 사이좋게 찍은 모습이다. 49재(齋)는 77齋라고도 한다.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며 기도하기에 조상을 기리는 제사 제(祭)가 아니라 명복을 비는 불공 재(齋) 자를 쓴다.

망자가 다음 세상에서 더 좋게 태어나기를 바라며 매 7일째마다 7회에 걸쳐 49일 동안 기도하는 의식이다. 윤회적 내세관에 따른 불교의식이다. 49재의 마지막 날 드디어 외할아버지가 저승에서 더 좋은 생을 받으셨다고 느끼셨는지 하얀 상복을 입으셨지만 나한테 두 이모와 두 외숙모, 엄마의 표정이 모두 하얗게 밝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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