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115) - 사랑이 지나치면 도리어 원수가 되고, 작은 베품이 오히려 큰 감은(感恩)을 낳기도 한다.
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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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4 15:43 | 최종 수정 2021.04.2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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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 사랑이 지나치면 도리어 원수가 되고, 작은 베품이 오히려 큰 감은(感恩)을 낳기도 한다.
천금으로도 한때의 환심(歡心)조차 얻기 어려우나
한 끼 식사로도 뜻밖에 평생의 감은(感恩)을 이룰 수 있으니
대개 사랑이 지나치면 도리어 원수가 되고
아주 작은 베품이 오히려 기쁨이 되기도 한다.
- 一時之歡(일시지환) : 한때의 환심. 당장의 환심.
- 一飯(일반) : 한 끼의 식사를 대접함. 작은 은혜를 베푸는 것을 말함.
- 竟(경) : 마침내, 뜻밖에도.
- 蓋(개) : 대개.
- 薄極(박극) : 사랑이 극히 박함. * 여기서는 ‘아주 작은 베품’ 의 의미로 해석하는 좋겠다. 즉 박대(薄待)하고자 해서 박대하는 것이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 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反(반) / 翻(번) : 도리어.
- * 『사기(史記』<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 에 ‘一飯之德必償(일반지덕필상) 睚眦之怨必報(애자지원필보) - 한 끼 식사 대접의 작은 은혜에도 반드시 보답했으며, 눈흘김의 작은 원한에 대해서도 반드시 보복했다.’ 라는 구절이 있다.
◈ 김삿갓의 시 두 편
「粥一器(죽일기)」- 죽 한 그릇
四脚松盤粥一器 (사각송반죽일기) 개다리 소반 위에 죽 한 그릇
天光雲影共排徊 (천광운영공배회) 하늘빛 구름 그림자 함께 떠도네
主人莫道無顔色 (주인막도무안색) 주인이여, 미안타 말하지 마오
吾愛靑山倒水來 (오애청산도수래) 나는야 청산이 물에 거꾸로 오는 것을 좋아한다오
「二十樹下(이십수하)」- 스무나무 아래에서
二十樹下三十客 (이십수하삼십객)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
四十村中五十食 (사십가중오십사) 망할 놈의 동네에선 쉰밥을 주네
人間豈有七十事 (인간개유칠십사)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不如歸家三十食 (불여귀가삼십사) 차라리 집에 가 설은 밥이나 먹을 걸
* 한시의 운(韻)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밑줄 친 食은‘먹을 식’이 아니라 ‘밥 사’로 읽어야 할 듯하다.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할 때의 ‘밥 사’말이다. 두 편 시의 그 기발함은 과연 김삿갓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것임에 틀림없으나, 그 중 백미(白眉)는 전 편의 마지막 구(句)인‘吾愛靑山倒水來’일 것이다. ‘청산이 물에 거꾸로 처박혀 오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오’라는 그 천연덕스런 해학성(諧謔性)이다. 전편에 비해 후편은 조금은 억지스런 느낌을 지울 수 없으니, ‘풍자(諷刺)의 신랄(辛辣)함에서 오는 쾌감(快感)’보다‘해학(諧謔)의 느긋함에서 오는 관용(寬容)’이 결국 ‘한 수 위’임을 알게 해준다.
※ 해질 무렵 어느 가난한 집 사립을 들어서니 주인 내외가 죽 한 그릇을 내어왔는데 그 놈의 죽이 얼마나 멀건지 산 그림자가 비칠 정도였다. 무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두 내외를 위로하며 지은 것이 앞의 시이다.
어느 여름날 방랑길에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피해 스무나무 아래로 뛰어들었으나 이미 쫄딱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거라. 그 길로 동네에 들어서 한 끼를 구걸하니 집집마다 동냥을 외면하는지라 겨우 어느 집에서 쉬어터진 쉰밥을 얻었던 모양이다. 그 서러운 신세를 언어유희로 노래한 것이 뒤의 시이다.
이 시를 통하여 ‘스무나무’ 라는 나무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스무나무로 말하자면, 그 옛날 20리마다 이정표로 심었기에 그 이름이 ‘스무나무’ 가 된 것이며, ‘오리나무’ 도 마찬가지로 5리마다 이정표로 심었던 나무이다. 그러니 앞으로 오리나무는, 뭍에서는 오리궁둥이로 뒤뚱뒤뚱 걷다가 물에 들어가면 좋아라하며 헤엄쳐 오리까지 간다는 그 오리(鴨 오리 압)와는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로 아시라.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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