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시인의 '시(詩) 읽는 밤' - 엄마 된 딸에게 / 석정희

이현수 승인 2021.04.15 22:12 | 최종 수정 2021.04.16 10:27 의견 0

어느 봄인들 그렇지 않을까마는, 올해의 봄도 불현듯 찾아와서 홀연히 떠나가고 있음이 보여 진다. 둘러보니 어느새 꽃들이 피어있고 그 꽃을 바라봐줄 여유조차 없던 차에 바람은 슬그머니 부드러워지더니 느닷없이 내리는 봄비에 만개한 꽃들은 벌써 하나 둘 지려한다.
 
무심한 기자가 봄을 늦게 감지한 건지 봄이 성급히 가는 건지 모르겠다 싶은 이 상황에 꽃이 피었다는 감탄조차 제대로 내뱉어보지 못하고 어리버리 살아가는 봄날이 너무 쓸쓸히 저물어가는 게 아닌가 싶은 안타까움이 더 명료하게 확인되는 날들이다.
 
이런 날, 우리에게는 시라는 묘약이 있지 않은가.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석정희 시인의 시는 가는 봄을 위로하는 신약 같은 느낌을 준다. 화려하지도 않고 미사여구에 불필요한 멋도 내지 않은 깔끔한 시밭에서 시인이 전하는 이야기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지 살펴보자. 

엄마 된 딸에게 / 석정희
 
널 생각하면
별을 낳은 듯 가슴 뛰던 날
그 별 가슴에 가득 뜨게
세상 모든 것 지워버렸다
빛으로만 채워지도록
어둠은 모두 밀어 내었다
저 끝에서 아장걸음으로
위태하게 다가오던 너
어느새 종종걸음 치더니
불현듯 총총걸음으로 날 떠나
이제 날 부르던 이름
엄마를 이름으로 달게 되었다
내 손 놓치고 울던 손
널 의지하는 손이 되어 붙들어
두렵던 어둠 밝히는 별로 뜨거라
호수 같은 눈 속엔 사랑만 담고
따스한 입김으론 미움 밀어내
어떤 거센 바람도 막는 방벽이 되어
별들 가득 하늘 채우는
큰 별로 뜨거라
 
어떤 거센 바람도 막는 방벽이 되어 별들 가득 하늘 채우는 큰 별로 뜨기를 바라는 엄마의 표현은 숙연함을 넘어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를 확장시키는 역할까지 한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얼마나 애틋하고 얼마나 사랑스러운 자식이고 딸이던가?
 
딸이라는 서정이 ‘별’이라는 시어에만 봐도 얼마나 눈부시고 찬란한 빛인지 알 수 있다. 어머니에게 딸이 가진 존재의 가치는 살아오고 살아가는 우리 삶의 어느 한 시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영원불변의 존재 그 이상임을 시인은 별이라는 단어를 빌려 말하려했던 것이다.
 
어쩌면 시인 스스로가 누군가의 엄마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딸이기도 했고 누군가의 아내이기도 한 삶의 자리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보면 ‘엄마 된 딸에게’라는 시는 시인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로 병마와 싸우는 남편 수발에 온힘을 다하는 시인의 마음을 대변하려고 썼던 시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달리 해석하자면 자기관리에 철저한 시인의 삶에 대한 자아실현인지도 모른다. 아픈 남편에게도 더 잘하고 하나뿐인 고명딸과 손주에게도 남은 정 다 쏟아 부어가며 이웃에게도 베풀며 살려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연민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난석 석정희
난석 석정희

◇석정희 시인은
▷Skokie Creative Writer Association 영시 등단
▷‘창조문학’ 시 등단, 한국문협 및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재미시협 부회장 및 편집국장, 미주문협 편집국장 역임
▷현) 한국신춘문예협회 중앙회 이사 및 미국LA 본부장
▷계간 『한국신춘문예』 심사위원(현) 등
▷수상 : 대한민국문학대상 수상, 한국농촌문학 특별대상, 세계시인대회 고려문학 본상, 독도문화제 문학대상, 대한민국장인(시문학)유관순 문학대상 , 탐미문학상, 에피포토본상 등
▷시집 《Alongside of the Passing Time 》(5인 공저 영시집), 《Sound Behind Murmuring Water》(4인 공저 영시집), 《문 앞에서 In Front of The Door》(한영시집), 《나 그리고 너》, 《The River》(영문시집), 《엄마되어 엄마에게》, 《아버지 집은 따뜻했네》
▷가곡집 《사랑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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